정의송 나이 프로필 본명 고향 학력 노래모음(님이여, 보고싶다 내 사랑) 근황 총정리

 나훈아, 설운도와 함께 대한민국 트로트계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님이여', '보고싶다 내 사랑',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등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가수 정의송. 그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김혜연), '빠이빠이야'(소명), '사랑해서 미안해'(송대관)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스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정의송


가난했던 막노동꾼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가를 꿈꾸던 소년이 공장 직공과 무명 가수를 거쳐 마침내 히트 작곡가이자 국민 가수가 되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여정과 주옥같은 노래들, 그리고 최근 근황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정의송 프로필: 기본 정보



  • 이름: 정의송 (鄭義松)
  • 출생: 1965년 8월 7일
  • 나이: 만 59세 (2025년 4월 기준)
  • 고향: 강원도 삼척군 삼척읍 정라리 (現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 가족: 배우자 홍진경 (*동명이인 가능성, 정확한 정보 확인 필요*), (8남 2녀 중 7남)
  • 학력:
    • 삼척국민학교 졸업
    • 삼척중학교 졸업 (추정)
    • 삼척고등학교 졸업 (1984)
  • 데뷔:
    • 1994년 작곡가 데뷔 (김혜연 '서울 대전 대구 부산' 히트)
    • 1998년 / 1999년 가수 데뷔 (앨범 '못 잊을 사랑' 등)
  • 소속사: JES엔터테인먼트
  • 직업: 가수, 작곡가, 작사가 (필명: 한겨레)
  • 악기: 아코디언 (가장 선호),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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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문학 소년, 음악에 눈뜨다



1965년 강원도 삼척의 가난한 집안, 8남 2녀 중 일곱째 아들로 태어난 정의송. 아버지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렸고, 어머니는 힘든 살림살이의 애환을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달랬습니다. 그는 늘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트로트의 정서와 감성이 몸에 배었다고 회고합니다. 이것이 훗날 그가 수많은 명품 트로트 곡을 쓰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삼척국민학교 시절, 맏형이 선물해 준 아코디언에 매료되어 온종일 연주에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악기는 아코디언입니다. 학창 시절 그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학생이었지만, 감수성만큼은 남달라 늘 공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본인은 이러한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이 작곡가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집에 하숙하던 철도 공무원이 치던 기타 소리에 매료되어 매일 그의 방을 찾아가 기타를 배웠고, 결국 자신의 기타를 장만하게 됩니다. 맏형은 그의 음악성을 일찍이 알아보고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정의송은 독학으로 작곡을 하고 틈틈이 노래를 만들었지만, 아직 음악가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보다는 문학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단지 음악이 좋고 그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가수의 꿈과 서울 상경, 그리고 시련



삼척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그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습니다. 우연히 관람한 '가왕' 조용필의 콘서트에 깊은 감명을 받고 오로지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이후 그는 학교에 책가방 대신 기타를 메고 다녔고, 이 때문에 선생님들께 수없이 야단을 맞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결국 "정의송은 원래 이런 놈이니 그냥 놔두자"며 그의 열정을 인정해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업은 뒷전이고 노래에만 빠진 아들을 아버지는 못마땅하게 여겨 혼내기 일쑤였고, 그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삼척시민 노래자랑'에 출전하여 최우수상을 받게 되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비로소 마음 놓고 노래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4년 삼척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졸업 앨범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졸업 직후 그는 어머니께 받은 5만 원과 기타 하나만을 들고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할 수 있는 야간업소를 찾아다니며 오디션을 봤지만, 그에게 노래를 시켜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갈 곳 없이 헤매던 중, 성수동 뒷골목 전봇대에서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갔지만, 기타를 멘 그의 행색을 보고 공장 담당자는 "노래하는 곳이 아니니 그냥 가라"며 문전박대했습니다. 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그는 간절히 사정하여 겨우 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마땅한 기술이 없어 재봉틀 작업 후 실밥을 따는 단순 업무를 맡았지만, 그는 직장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합니다. 당시 월급 11만 원 중 절반은 쪼개어 음악 공부에 투자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음악 학원에 다니며 노래 공부를 했고,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동대문부터 종로까지 모든 음악다방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공장 생활 1년 6개월 후, 숙식을 제공하며 월급까지 준다는 마천동의 '라이브'라는 업소로 옮겼지만, 그곳 역시 장사가 잘되지 않아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래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군 입대 영장을 받았고, 업소 사장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5만 원을 받고 다시 삼척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서울로 올 때와 똑같이 5만 원밖에 손에 쥐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큰 자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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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로서의 성공: 히트곡 제조기



육군 제대 후 다시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가난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1992년, 정의송은 가수의 꿈을 잠시 접고 작곡가로 전향하기로 결심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작곡을 연습해왔기에 어쩌면 이 길이 성공의 발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곡가로 전향한 후 그는 수많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샹송과 칸초네를, 스탠드바나 카바레에서는 트로트를 부르며 쌓았던 다양한 음악적 경험은 그가 폭넓은 장르의 곡을 만드는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그가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폭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옵니다. 가수 김혜연에게 만들어 준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정식으로 작곡가 정의송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입니다.



이후 소명의 '빠이빠이야',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 김용임의 '내 사랑 그대여', '훨훨훨', '사랑아', 한혜진의 '정말 진짜로', 유지나의 '무슨 사랑', 장윤정의 '첫사랑', '어부바' 등 수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주었고, 이 곡들이 연이어 크게 히트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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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꿈을 이루다: 싱어송라이터 정의송




작곡가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가수에 대한 미련과 못다 이룬 꿈에 대한 갈망이 늘 남아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1998년(또는 1999년) '못 잊을 사랑' 등이 수록된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며 마침내 가수로 데뷔, 오랜 꿈을 이루게 됩니다.



가수로서 그의 대표곡은 단연 '님이여'와 '보고싶다 내 사랑'입니다. 특히 '님이여'는 2021년 '미스트롯2'에서 가수 윤태화가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위해 부르면서 다시 한번 큰 감동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외에도 '미련', '파이팅', '거짓쟁이', '응어리',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옛날애인', '꽃보다 그대' 등 자신의 삶과 감성을 담은 수많은 노래들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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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송 대표곡 및 작곡 노래모음



정의송이 직접 부른 대표곡과 다른 가수들에게 만들어 준 히트곡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의송 대표곡 (직접 가창):
    • 님이여
    • 보고싶다 내 사랑
    • 못 잊을 사랑 (1998/1999)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미련
    • 파이팅
    • 거짓쟁이
    • 응어리
    • 창 밖에는 지금요
    • 옛날애인
    • 꽃보다 그대
    • 가고픈 부산송도
    • 그랬었구나
    • 두번 다시
    • 손이 차가운 여자
    • 삼척에서
    • 내마음 꾹꾹
    • 마세요
    • 강진애
    • 미숙이
    • 눈물 젖은 빵
    • 세월 도둑
  • 주요 작곡 히트곡 (다른 가수):
    • 김혜연: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세상보기, 간 큰 남자, 서울 평양 반나절, 참아주세요
    • 소명: 빠이 빠이야, 유쾌 상쾌 통쾌
    • 송대관: 사랑해서 미안해, 너 하나
    • 김용임: 내 사랑 그대여, 훨훨훨, 사랑아, 항구의 연인
    • 유지나: 무슨 사랑 (원곡: 정의송 '거짓쟁이')
    • 장윤정: 첫사랑, 어부바
    • 박현빈: 빠라빠빠
    • 한혜진: 정말 진짜로
    • 류계영: 인생, 하기나름, 나 당신을
    • 이혜리: 아이 좋아라
    • 장민: 첫사랑, 사랑합니다
    • 하나로: 옥이,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 최예진/윤태화: 찍고 / 찍고 찍고 찍고
    • 임주리: 사랑한 후에
    • 이명주: 사랑이 가네
    • 이상화: 삼류소설가
    • 김도현: 두려운 사랑
    • 위금자: 행복

*(이 외에도 수많은 곡을 작곡했으며,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중 독보적으로 메들리 음반을 많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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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활동 및 여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정의송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고 있으며, 각종 가요 프로그램과 행사 무대에 오르며 팬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개인 유튜브 채널 '정의송TV'를 통해 자신의 노래와 일상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MBN '불타는 트롯맨'에 최고령 참가자로 도전했지만 아쉽게 예선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작곡한 곡에 직접 코러스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으며(김용임 '내 사랑 그대여' 등), 작사가로 활동할 때는 '한겨레'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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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정의송. 공장 직공에서 히트 작곡가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트로트의 감성과 삶의 애환을 녹여낸 그의 노래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정의송의 건강과 끊임없는 음악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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